경제민주화를 경제활성화와 대립시키는 사고 안돼

4.13 총선이 야권의 과반 획득으로 막을 내렸다. 현재의 야권이 총선에서 승리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2004년 총선 이후 무려 12년만이다. 당시엔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에 따른 역풍이 정치권을 강타했던 상황이었다. 유권자들은 그 당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여당에 의석수를 안겨줬다. 2004년 한나라당은 121, 2016년 새누리당은 122석을 획득했다.

 

이 같은 선거결과에 제일 놀란 것은 물론 정치권이다. 일명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인 정치인, 정치부 기자, 정치평론가 등도 당초 새누리당의 무난한 과반 획득을 예측했다. 그만큼 이번 선거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빗나갔다.

 

정치권만큼 선거결과에 충격을 받은 곳을 꼽자면 재계가 있다. 재계의 선거직후 첫 반응은 다음 날 오전 9시경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의로 나왔다.(그 전에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논평을 냈지만 이는 선거결과와 무관한 의례적인 반응이었다.)

 

경총은 논평에서 "20대 국회가 견실한 입법활동을 통해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면서도 "또한 선거과정에서 제시된 공약들은 합리적인 관점에서 재검토하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 의정활동을 펼쳐 주길 당부하는 바이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공약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다.

 

이에 앞서 경총은 지난 4'20대 총선 주요 공약에 대한 경영계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49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발표한 바 있다. 여야가 내놓은 경제공약 중 일부를 46개항으로 분류해 반박입장을 내놓은 것. 46개항 상당수는 야당 공약 비판으로 채워졌다. 여야가 비슷한 공약을 낸 것을 제외하고 새누리당 단독 공약 비판은 2개항에 불과했다.

 

이 같이 비판적 입장을 내놨던 야권이 과반을 차지했으니 재계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여의도에선 재계가 야당 주요 경제통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한 재계 관계자는 "더민주 경제민주화와 국민의당 공정성장이 경쟁적으로 기업 활동을 옥죌까봐 걱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두 야당의 입법부 과반수 획득은 분명 이전보다 더 강력한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추진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가 기업 활동을 옥죌 것이라는 재계의 우려는 기우나 엄살에 가깝다. 경제민주화는 경제활성화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닌 보완 개념에 가깝다.

 

경제민주화는 2012년 대선을 전후해 시대적 흐름이 됐다.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경쟁자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보다 더 강력한 공약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속도조절에 들어간 모양새이지만 시대적 흐름임은 부인할 수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 1"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경제민주화를 실천했다"고 자화자찬한 바 있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헌법 119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말 그대로 경제력 남용 방지와 경제주체 간 조화를 강조해 균형 있는 국민경제 성장을 추구한다는 개념이다. 경제활성화가 없다면 선거 승리도 없다는 것을 야당 역시 충분히 알고 있다.​ 실제 두 야당도 총선 공약의 상당부분을 경제활성화 정책으로 할당했다. 대기업들에 대한 여러 당근책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재계의 우려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8년 동안 친대기업 정책의 타성에 젖은 결과물일 뿐이다.

 

물론 경제민주화를 경제활성화와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는 두 야당의 몫이다. 두 야당은 20대 국회에서 19대 국회와 달리 과반의석을 바탕으로 국회 입법을 주도해야 하는 책임을 안게 됐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에서 더 나아가 입법부 주도세력으로서의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재계의 야당 정책 평가도 이에 발맞춰 진행되면 된다. 예단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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