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가 아니다

    2015년 샤넬 컬렉션, 톱 모델들이 ‘History Is Her Story’ 같은 문구를 들고 런웨이를 행진했다. 2017년, 같은 상황이 리얼 웨이에서 일어났다. 공공연히 이민자와 여성을 비하한 트럼프가 당선되자 분노한 이들이 여성 인권 행진을 기획한 것. 그즈음 국내에서는 ‘검은 시위’가 있었다. 낙태법 폐지를 주장한 수많은 이들이 검은 옷을 입고 광장에 모여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패션, 정치, 사회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일렁이는 페미니즘 운동은 현재 진행형. 문학도 예외는 아니다. ‘창세기’ 속 최초의 여

  • 메리 셸리, 미래를 보여주다

    1816년은 ‘여름이 없던 해’였다.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의 분화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무려 9만2천명이 죽었다. 당시 뿌려진 화산재 150억 톤은 주변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북반구 전체의 계절이 바뀌었다. 여름 내내 지독하게 추웠다. 미국 북동부 지역에서는 서리가 내려 모든 경작지가 얼어붙었고, 프랑스에서는 식량 폭동이 일어났다. 영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일랜드에는 기근과 장티푸스가 번져 5만 명이 죽었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이 활동하기 좋은 날씨다. 바로 그 여름 아닌 여름에, 열아홉 살의 메리 셸리는

  •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

    최근 사망한 프랑스 국민 가수 조니 할리데이는 다섯 번 결혼하고 네 번 이혼한 스캔들 메이커로도 유명했다. 마지막 아내 래티시아를 만났을 때 그의 나이는 56세, 래티시아는 21세였다. 래티시아는 친구의 딸이었다. 위대한 아티스트의 사망을 추모하며 나의 ‘중년 남자 사람 친구’는 말했다. “나는 조니 할리데이를 정말 좋아해. 하지만 만약 내 친구가 내 딸과 결혼한다면 그놈을 죽여버릴 거야.” 나는 그에게 웬만하면 셀러브리티 친구는 만들지 말라고 조언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아저씨’와 어린 여자의 연애는 흔하다. 최근엔 이병헌과

  • 소장 만화 열전

    ‘천사가 아니야’ 야자와 아이 作순정 만화를 좋아한다. 서른둘이 된 지금도 여전하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 같다. 다들 순정 만화를 러브 스토리만 존재하는 연애물로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천사가 아니야』는 바로 그런 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정 만화로 꼽을 수 있다. 만화 속 미도리와 아키라, 유코와 슈이치 그리고 시노의 관계는 매우 유기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때문에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만화라는 허구 세상에 대한 향수마저 일으킨다. “너 같은 친구는 이제 못 만날지도 몰라.” 켄의 콘서트

  • [미술관 산책] 자코메티, ‘나는 걸어간다, 고로 살아간다‘

    인간은 직립함으로써 독립한다. 유아기를 지나 홀로 일어서면서부터 인간은 독립된 개체로서 인생을 시작한다. 지난 20세기 서구사회는 중세시대부터 이어져온 이성주의로부터 독립했다. 신, 이성, 합리주의, 조화 등에 의존해오던 사상의 버팀목을 걷어차고 ‘실존주의‘라는 이름으로 직립했다. 지금 현재의 ’삶‘과 ’존재‘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 결과 존재와 사상의 자유를 획득했지만, 불안과 고독이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증폭된 존재의 불안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며 현대인들의 뒷덜미를 낚아채고 있다. 사람들은 어디로

  • 넘쳐나는 육아 정보 속 올바른 길 찾기

    가정훈육 백과사전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현실은 엄마 혼자 독박육아로 키우는 가정이 허다한 요즘. 육아 및 교육 전문가 110여 명이 뜻을 모아 교육 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가정훈육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려주는 책이 나와 화제다. 발달 단계에 따라 영유아기(1~7세)와 아동기(7~13세)로 나누어 자녀를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우기 위해 반드시 가르쳐야 할 기본 생활습관을 다룬다. 또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가짐, 아이의 성격에 따른 가정교육, 가정생활을 통해 익혀야 할 인성교육, 건강과 안전에 대한 생활

  • 시골 개가 전하는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

    메리안녕달의 전작들에서 시종일관 즐겁고 명랑하게 등장했던 개 ‘메리’가 이번에는 주인공으로 나온다. 메리는 “우리도 강생이 한 마리 키우자”는 할아버지의 한마디에 아빠가 옆 동네서 얻어온 강아지. 새끼 강아지 메리는 집에 처음 온 날 밤, 엄마를 찾느라 밤늦도록 낑낑대지만 시간이 흘러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해맑은 시골개로 성장한다. 새끼 세 마리를 낳아 이웃으로 떠나보내고 다시 홀로 남기까지의 이야기가 다소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메리의 곁에 언제나 함께하는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에는 깊은 위로를 받는다. 정

  • [미술관 산책] 푸른빛으로 우주를 빚어낸 김환기

    도시에서 자취를 감춘 푸른색이 종로구 부암동엔 아직 가득하다. 지난 시대의 촌스러움이 담긴 울퉁불퉁한 골목길과, 그 골목길 어귀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 80년대 방앗관, 이발소, 그리고 찻집들은 옛 시절 들이마셨던 푸름을 하루하루 조용히 뱉어내고 있다. 인왕산 끝자락에 위치한 석파정, 건너편의 북악산과 한양도성길에는 자연의 푸르름이 계절과 함께 변주한다. 북악산 한양도성길을 따라 걷다 창의문으로 빠져 길 하나를 건너면 산자락에 위치한 환기 미술관을 마주친다. 고(故) 수화(樹話) 김환기의 작품들이 여기 모두 모여 있다. 환기 미술관은

  • 천재 소녀 성장기

    “미국 대입 시험 만점 따위는 제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조사해보면 아실 거예요.” 주인공 ‘린’은 첫 장면부터 자신만만하다. 내가 누군데 그깟 시시한 시험 때문에 커닝을 했겠냐는 투다. 그렇게 잘난 아이가 어쩌다 조사관들 앞에서 진술을 하고 있는 걸까? 지난해 태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 는 제목 그대로 못된 천재 이야기다. 그 아이를 못되게 만든 것은 교육 현장까지 침투한 물질만능주의와 입시 지옥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실리에 충실한 소녀 린은 자신에게 매우 값비싼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래서

  • 잘 둔 남친 소속사보다 낫다

    예정화 ♥ 마동석몸짱 스타로 이름을 알려오던 예정화가 스타덤에 오른 것도 열애설 덕분이었다. 연예계 대표 몸짱 남자 스타이자 연기파 배우 마동석과의 열애 사실이 알려진 직후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 연인 마동석이 출연한 영화 에 카메오로 출연하는가 하면, 각종 트레이너 프로그램에 섭외되는 등 어느 때보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는 후문. 게다가 공식 석상에서 마동석이 예정화에 대해 종종 언급하면서 두 사람의 시너지 효과가 더욱 높아졌다. 눈길을 끄는 건 두 사람의 소속사가 같다는 것. 마동석이 예정화를 적극

  • 세계를 만드는 자, 어슐러 르 귄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 있고 세계를 향유하는 사람이 있으며, 세계를 재현하려는 사람이 있다. 나는 향유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만든 세계를 떠돌고, 그들이 낸 길을 걷고, 그들이 펼쳐놓은 바다를 바라본다. 그 속에서 사람들의 대화를 곱씹고 현실에 반쯤 걸쳐놓은 발가락을 꼼지락대며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를 좇는다. 그리고 내가 떠돌고 향유한 세계 중 가장 멋진 곳은 단연코 ‘어스시(Earthsea)’다. 작가 어슐러 르 귄을 꽤 오래전부터 좋아해왔다. 이국적인 이름을 혀를 굴려 발음할 때의 느낌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내가 그의 작품 중

  • 아이에게 공부의 동기를 불어 넣는 법

    아이의 공부지능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즐거워서 공부하는 아이, 잔소리하지 않아도 알아서 책상에 앉는 아이로 키우는 노하우를 전한다. EBS , 등 여러 방송 매체에서 멘토로 활약하는 교육 전문가인 저자가 조언하는 아이의 ‘공부지능’ 개발법을 담은 책으로, 공부란 머리로만 하는 게 절대 아니라고 강조한다. IQ가 낮아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들은 왜 공부해야 하는지 분명한 동기와 끈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 아이들은 IQ, EQ, 집중력, 창의력 4가지 영역의 지능이 골고루 발달해

  • 내 아이의 가장 특별한 날을 기억하는 방법

    ​ 내 생일은 언제 와요?1년 중 아이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은 바로 생일. 책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내 생일은 언제 와요?”, “생일 파티는 어디서 해요?”, “몇 밤을 자면 생일이 올까요?”라고 끊임없이 물어본다.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길 때마다 선물, 케이크와 맛있는 음식, 생일 카드, 파티, 초대 등 아기자기한 요소를 가득 담아 생일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아이들 눈높이에서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이 그림책은 세 자녀를 키우는 저자가 자기 생일을 기다리는 아이들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했

  • 토닥토닥, 혼자여도 괜찮아

    혼자일 것, 행복할 것 _홍인혜‘혼자’라는 순간을 절실하게 느끼던 날을 기억한다. 긴 연애에 종지부를 찍었던 날도 아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던 날이었다. 그 당시 읽었던 이 책은 긴긴 주말 밤 내게 큰 위로를 주었고,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실용적인 팁도 전해 주었다. 이 책은 30대 싱글 여성의 독립 성장기이자 실전편이다. ‘독립’, ‘미혼 여성’, ‘30대’라는 키워드를 가졌다면 눈물을 찔끔거릴 만큼 위로되고 깔깔깔 소리 내어 웃을 만큼 공감되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다. 혼자여도 괜찮다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잘 살고 있다고

  • 예수, 세상에서 제일 비싼 액자 속 인물

    인류사에서 예수만큼 ‘핫’한 인물도 없다. 2000년 전 탄생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논란과 관심의 중심에서 빗겨난 적이 없다. 전 세계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인구가 예수를 믿고 있으며, 그의 아버지와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성경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뉴욕 현지 시각)에 예수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값을 증명했다.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수 상반신이 담긴 그림이 4억 5000만달러(한화 약 5000억원)에 팔려 미술품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갱신했다. 해당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 천재 화가

  • 탐나는 굿즈

    82년생 김지영아주 평범한 이름을 가진 소설 속 김지영은 모든 여성들을 대변한다. 여자이기 때문에 받은 부당한 일들을 속속들이 꼬집어 풀어낸 을 읽다 보면 ‘나 혼자만 싸워온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과 위로, 차별에 대한 분노와 애석함이 뒤섞인 복잡 미묘한 감정이 어느 틈엔가 차오른다. ‘돕는다’는 말은 ‘내 일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기반에 깔려야 할 수 있다. 이제 “그놈의 돕는다는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라는 글귀가 쓰인 앞치마를 입고 그동안 자신이 집안일을 ‘돕는다’고 생각한 남편들을 정신차리게 하자.글귀

  • 벽 위에 피어난 검은 꽃

    불과 몇 년 전이었다. 거리 위 벽면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켜 사람들은 ‘낙서’라 불렀다. 그라피티를 포함한 스트리트 아트는 하류 문화로 치부되었고, 일탈을 꿈꾸는 어느 젊은이의 반사회적 행위일 뿐이라 여겼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같은 부정적 시선이 변하기 시작했다. 오랜 전통의 패션 하우스 구찌에서는 ‘구찌 고스트(Gucci Ghost)’라는 닉네임의 그라피티 아티스트 트레버 앤드루(Trevor Andrew)와 협업을 시도했고, 패션계 새로운 형태의 컬래버레이션 열풍을 야기했다. 사뭇 달라진 시각은 국내 또한 마찬가지였다. 얼마

  • 상처를 치유하는 도구, 책

    내 인생 최고의 책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던 에이바가 북클럽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이혼의 아픔을 달래고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 북클럽 멤버들은 누군가에게 축하할 일이 생기면 늘 가장 먼저 축하해주고 상심한 사람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며 위로해줄 뿐만 아니라 암 환자인 멤버를 돌아가며 병원에 데려다주는 등 서로를 각별하게 챙기는 친밀한 사이다. 책을 읽으며 멤버들은 서로 어떤 아픔과 상처를 지닌 채 살아왔고,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지 차츰 알아나간다. 유방암으로 투병하거나, 여섯 아이를 키우고, 이혼의 상처를 지니

  • 너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봐

    숲에서 보낸 마법 같은 하루엄마 손에 이끌려 시골 외딴집으로 여행 아닌 여행을 떠난 아이는 불만이 가득하다. 엄마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느라 자신에게 관심도 없다. 아빠도 없어 함께 놀아줄 사람도 없다. 시위라도 하듯이 아이는 소파에 누워 게임만 하고, 엄마는 결국 게임기를 빼앗고 만다. 아이는 게임기를 다시 사수해 밖으로 뛰쳐나간다. 집을 나온 아이가 갈 수 있는 곳이라곤 숲밖에 없다. 그런데 숲은 아이에게 예상치 못한 경험을 선물한다. 나무에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보고, 바람의 냄새를 맡고, 매끈하고 투명한 조약돌

  • 밥상 차리는 여배우

    ‘좋은 선수가 좋은 감독이 되는 건 아니다.’ 스포츠계의 불문율이다. 영화계도 마찬가지지만 더러 예외는 있다. 할리우드에서는 배우들이 제작사를 차려서 직접 프로듀서가 되거나 연출을 하는 경우가 많다. 돈을 떠나 자기가 출연할 작품을 직접 발굴하려는 의도가 크다. 그게 전통으로 자리 잡자 클린트 이스트우드, 조지 클루니, 벤 애플렉처럼 연기와 연출 모두에서 정상에 오르는 이도 생겼다. 아쉽게도 여자는 사정이 다르다. 요즘 리즈 위더스푼이 제작자로서 대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감독으로 성공한 여배우는 거의 없다. 그나마 꾸준히 연출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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