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연 기자의 MAKE IT WORTH 일보 전진

    물리적으로 접할 수 없는 곳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 문화 등을 알아보기에 영화와 전시만큼 좋은 것도 없다. 열 마디 말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빠르게 와 닿고 이해된다. 에디터가 한창 환경문제와 동물권에 관심을 가졌을 때 관련한 책을 읽은 것만큼 많이 찾아본 것이 영화였다. 국적, 인종 상관없이 우리의 삶과 마주하며 문제의식을 전달할 수 있고,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추천하던 것이 영화였기 때문.하지만 좋은 환경 영화를 찾기란 좋은 상업영화 찾기보다 더 어렵다. 또 국내에서 해외 작품을 찾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토록 좋은 영

  • 자연의 경이로움을 이야기하는 작가

    지인이 3:1의 경쟁을 뚫고 텃밭에 당첨됐다며 기쁜 소식을 알렸다. 텃밭 이야기에 먼저 떠오른 것은 상추, 가지, 호박, 오이였고, 그다음에야 나무 그늘, 흙냄새, 포슬포슬한 흙이 물에 젖어들 때 나는 작고 보드라운 소리, 새잎의 연한 초록빛 같은 것이 떠올랐다. 반성했다.나는 수많은 어리석은 인간이 그렇듯이 자연을 슈퍼마켓처럼 생각했구나. 돈이든 노력이든 지불하면 뭔가를 당연히 집어 올 수 있는 그런 곳.메리 올리버는 자신을 자연에 대한 ‘리포터 시인’이라 불렀다. 매일 숲과 바닷가, 들판을 산책하며 보고 들은 것을 시로 옮겼다고

  • 이재인을 바라보는 방법

    영화 >에서 불행한 운명을 살아가는 소녀 ‘금화’, 악령과 짐승과 사람의 경계가 불분명한 쌍둥이 언니 ‘그것’을 연기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이재인의 나이는 금화와 같은 열여섯이다. 작은 체구와 맑은 얼굴이 아니었다면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몰입도 높은 연기를 보여준 이 배우를 영화 밖에서 만났다. 솔직히 그를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지 고민했다. 대화를 편하게 나눌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러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이 앞에 있는 사람은 작고 예쁜 열여섯 소녀가 아니라 배우 이재

  • GOODS IS GOOD

    컬렉터들이 넘쳐나는 소유의 시대.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의 근원은 으레 나의 취향을 드러내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예술적 취향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서 전시장에서 아트 굿즈를 구매하곤 한다. 물질을 소유하면서 취향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셈이다. 또한 고가여서 구매가 어렵거나 접근하기 힘든 유명 작가의 작품 일부를 손쉽게 간직할 수 있다는점 역시도 많은 이가 아트 굿즈를 소비하는 이유일 터. 비록 그것이 기계로 만들어낸 복사본일지라도. 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의 작품은 공장에서 수십 장

  • 탐식가를 위한 책

    1 이해림미식가가 특별한 기호에 따라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다면, 탐식가는 맛의 세계에 질문을 던지며 탐색하는 사람이다. 저자 이해림은 책에서 자신을 미식가도 대식가도 아닌 ‘탐식가’라 정의한다. 그는 매거진 기자로, 또 푸드라이터로 일하는 동안 “왜 맛있을까?”라는 질문을 일관되게 던져왔다. 그리고 이 질문의 답을 취재에 골몰하며 구한다. 맛의 ‘팩트’를 끈질기게 찾는 것이다. 에는 그렇게 얻은 답이 담겼다. 출하 시기와 특징이 다른 식재료를 구별해 종류에 따른 맛을 눈앞에 차린 듯 펼쳐내고, 각 품종에 적

  • 누구의 뮤즈도 아닌 젤다

    나는 젤다(Zelda Sayre Fitzgerald, 1900~1948)의 일기장을 읽고 싶다.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득차 있을까. 젤다는 딸 스캇티를 낳고 쓴다. “딸이라서 다행이야. 저 애가 바보가 되면 좋겠어. 이 세상에서 여자는 예쁘고 작은 바보로 지내는 게 최고니까. 그거 알아? 나는 이 세상 모든 게 끔찍해.” 그의 냉소, 예민한 반짝거림, 통찰력. 모든 게 담긴 일기장이 궁금하다.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없다. 그의 남편인 스콧 피츠제럴드가 젤다의 일기를 출간하자는 에디터의 제안을 묵살했기 때문이다. 그는 젤

  • 요즘 옛날이요 ‘뉴트로’

    사진관 ‘산격동사진관’개화기 때 의상을 입고 화려한 배경 앞에서 사진을 찍는 복고풍 사진관이 요즘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을 연상케 하는 배경, 영화에서나 봤던 의상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자아낸다. 이때문인지 최근 익선동에는 개화기 의상 대여점이 늘며 고풍스러운 개화기 의상을 입고 골목을 누비는 이들이 많아졌다.위치 서울시 마포구 홍익로5안길 20 문의 070-8261-7593 카페 ‘희다’높다란 1인용 앤티크 의자, 사각 밥상 테이블, 자개 문양 화장대와 거울까지. 말 그대로 먼옛날에 사용했던 소품을 이용

  • 실용성과 미적 가치를 모두 갖춘 브랜드 주란(JURAN)의 황주란

    브랜드 소개를 부탁한다. 주란(JURAN)은 유니크함과 미니멀리즘을 갖춘 디자인을 선보이는 퍼니처&프로덕트 디자인 브랜드로 2017년 5월 론칭했다. 스툴 시리즈를 시작으로 생활 소품, 사이드 테이블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가구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의 출신 학교인 킹스턴 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온 경험이 디자이너 황주란에게 무엇을 남겼나?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 능력이다. 스케치 하나를 발표해도 교수의 끊임없는 질문 공세가 이어진다. 왜 그 디자인이 나왔는지, 왜 그 재료인지, 그 디자인이 어떤 기능을

  • “말썽부려도 괜찮아요, 엄마 아빠는 다 이해해줄 거예요” 프랑스 그림책 작가 벵자맹 쇼

    어린이 독자를 위한 작품을 짓기 때문일까? 아이처럼 순수한 미소가 인상적인 프랑스의 그림책 작가 벵자맹 쇼. 프랑스의 ‘국민’ 그림책 작가로 불리는 그의 대표작 는 2013년 ‘올해의 그림책’에 선정 되고, 2014년에는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인 안데르센상을 수상했다. 그가 프랑스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이유는 2012년 프랑스 정부가 선정한 ‘처음 만나는 책’에 이름을 올려 그해 태어난 2만8000명의 신생아가 그의 책을 한 권씩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천진난만한 장난꾸러기 아이들과 이를 이해하고

  • 미술관이 된 수영장

    GLOBAL PARIS 박물관 ‘라 피신느(La Piscine)’는 말 그대로 ‘수영장’이라는 뜻이다. 루베의 수영장은 평범한 수영장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5번째로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선정됐고, 한 해 평균 25만 명이 찾는 유럽에서도 이름 있는 문화 공간이다. 전시품에 피카소의 ‘양을 든 남자’를 비롯해 자코메티, 카미유 클로델 등 이름 있는 예술가의 작품들도 포함됐다.미술관이 되기 전 이 수영장은 루베 주민들의 자부심이었다. 1930년대, 한창 산업화의 바람이 불고 루베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며 사회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노동자

  • 그놈을 죽였어야 해

    조재범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체육계 전반의 문제라는 진단도 나온다. 협회–지도자–시니어– 주니어로 이어지는 철저한 위계질서, 단체 생활, 체벌과 훈육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 강간을 여성 지배 수단으로 이용하는 그릇된 남성 문화, 여성 지도자를 길러내지 않는 스포츠 정치판, 가해자에 온정적인 판례들이 결합되어 곪을 대로 곪아버린 환부가 그나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영향력 있는 여성의 폭로로 터져 나온 거다. 다행히 이번에는 관련 기관들이 발 빠르게 대책을 발표하고 언론이 2차 가해 방지를 위해 피해자 아닌 가해자 이름으로 사

  • 스튜디오 픽트는 호기심을 만든다

    스튜디오 픽트 @fictstudioFrom Craft To Industry의앞 글자를 따서 이름 붙인 스튜디오 픽트(FICT). 자개라는 소재가 본격적으로 ‘레트로’ 붐을 타기 전, 자개 원패의 아름다움을 감지하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덜어내 현대적인 오브제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에 몰두했다. 또 한 번 새로운 소재를 찾아 모험을 해볼 생각이다.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는 아이템 중에 자개장을 빼놓을수 없을 거다. 주로 할머니댁에 놀러 가면 안방을 차지하고 있던 화려하고 무거운 자개장. 혹은 과일을 깎아 내주시던 자개 상. 한때는 부의 상

  • 아시아 라이징

    미국에 있는 아시아 커뮤니티가 지금처럼 뜨겁게 팽창된 적이 있었던가 싶다. 아마도 대중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것은 리치 치가의 ‘Dat $tick’ 뮤직비디오부터였을 거다. 분홍색 폴로 셔츠에 힙색을 찬 동양 소년이 뿜어내는 스웨그가 유튜브를 강타했다. 이 영상을 기점으로 리치 치가는 리치 브라이언으로 이름을 바꾸고 하이어 브라더스, 키스에이프, 조지 등과 작업했다. 이들의 활동엔 션미야시로가 창립한 레코드 레이블, 비디오및 마케팅 회사인 ‘88라이징’이 있다. 아시아 이민자의 문화 창고가 되겠다는 원대한 목표 아래 재능 있고

  • 가파도 프로젝트

    재생은 여전히 유효한 화두지만, 지역에 대한 이해도 없이 시작되는 프로젝트는 지역 생태계를 위협하는 난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현대카드와 제주도의 도움 아래 건축사사무소 ‘원오원아키텍츠’의 손끝에서 완성된 ‘가파도 프로젝트’는 지역 주민들의 삶을 충분히 고려한 성공적인 프로젝트라고할 수 있다. 30년 사이에 인구의 10분의 1이 줄어든 이 아름다운 섬의 경제와 생태, 문화를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 2012년 ‘가파도 프로젝트’가 시작됐다.단발성으로 끝나는 프로젝트가 아닌, ‘마라톤’에 비유

  • 을지로 ‘갬성’

    커피한약방 & 혜민당을지로 고층 빌딩 사이 골목 뒤편에 자리한, 레트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카페 커피한약방. 사람 하나 겨우 지날 만큼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엔 ‘커피한약방’, 왼쪽엔 ‘혜민당’이 있다. 이곳은 허준 선생이 진료하던 혜민서 자리인데, 2014년 연극배우 강윤석이 ‘커피한약방’을 먼저 개업했고, 반대편에 양과자점 ‘혜민당’도 오픈했다. 앤티크한 가구와 소품, 조명까지 디테일하게 신경쓴 때문인지 왠지 드라마 의 ‘구동매(유연석 분)’가 가베(커피의 한자어)를 마시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경험한 것만 쓰는 소설가

    작가 아니 에르노는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지녔다.감탄을 자아낼 만큼 불편한 아름다움. 그러던 그가 지금은 78세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때의 귀기는 없다. 그때의 모습은 소설 에 잘 보관되어 있다.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전면적으로 ‘픽션’을 거부하고 자신의 작품이 모두 허구가 아닌 사실적 기억에 의존하고 있음을 선언했다. 그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못 박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읽는 일은 남다른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그에게 있어 ‘문학’이라는 것은

  • 열다섯 살 소년의 응원가

    ​ 영화 가 흥행하면서 퀸(Queen)이 새삼 화제에 올랐다. 심지어 퀸의 고향 영국보다 한국 내 흥행 수익이더 높단다. 4050 세대 중에는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린 이도 적지 않다 니, 이 영화가 고단한 중장년층의 봉인된 열정과 에너지를 해제한 모양 이다. 아이 엄마가 된 30대 소녀들은 또 어떤가. 지난 10월, 17년 만에 열린 H.O.T. 콘서트는 왕년의 소녀 팬들에게 즐거운 후유증을 남겼다. 그러고 보면 음악에는 세대를 묶는 강렬한 힘이 있는 게 틀림없다. 비슷한 이유로 를 더 즐겁게 봤다

  •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 칼럼 스콧을 만나는 내내 ‘곰돌이 푸’가 생각났다. 날렵한 외모의 칼럼에게서 푸근한 곰돌이를 떠올린 건 행복한 기운 때문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과 미소를 잃지 않는 곰돌이 푸처럼 그역시 밝은 기운으로 가득 찼다. 귀를 확잡아끄는 매력적인 목소리의 이 영국 뮤지션은 하마터면 ‘우리 집안 가수’로 그칠 뻔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HR 회사를 다니던 그는 샤워를 할 때나, 방 안에서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던 흥이 많은 청년이었다. 그의 재능을 발굴한 건 이미 음악 예술 분야에 진출한 여동생이었다. 오빠의 목소리가 집 안에만 맴도는

  • 민폐녀는 가라

    ​ 요즘 공연계에서는 ‘성 중립 캐스팅’이 화제다.​ 영국에서는 문화·예술이 각종 차별을 재생산하는 것에 반대해 성별, 인종, 나이, 장애 등을 떠나 캐스팅하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햄릿’을 여배우가, ‘오필리아’를 남배우가 연기하는 식이다. 한국에서도 등이 남녀 배우 더블 캐스팅을 시도했다. 영화 쪽은 상황이 다르다. 공연의 주 소비층은 문화생활에 적극적으로 시간과 돈을 쓰고 전위적인 시도에 관대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영화 관객은 훨씬 다양하다. 변화에 보수적일 수

  • 박완서, 역사의 이름

    ​ 일본에서 태어나 독일어로 글을 쓰는 작가 다와다 요코는 2001년 주한독일문화원의 초청으로 서울에 왔다가 박완서 작가를 만난다. 토론자 중 한 사람이었던 박완서 작가에게 한 학생이 질문했다. “영향을 받은 외국 작가는 누구인가요?” 박완서 작가는 우리가 아는 유럽의 유명한 작가 몇 명의 이름을 말했다. 도스토옙스키, 발자크 등. 그러자 그 학생은 덧붙여 질문했다. “일본 문학은 전혀 읽지 않으셨나요?” 그러자 더 놀란 건 박완서 작가였다.“외국 작가 중에서 영향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묻지 않았나요? 일본 문학이 외국 문학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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