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K)팝에서 사라지는 케이(K)에 관해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어느 날 운전을 하면서 무작위로 음악을 듣고 있는데, 익숙한 느낌의 팝이 흘러나왔다.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긴 하지만 분명 한국음악은 아닌 듯했다. 빌보드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전형적인 아메리칸 팝 사운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레코딩의 느낌이 그랬고, 확신했던 건 가사가 전부 영어였단 점이다. 영어 가사에 어색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영어권 가수일거라 확신하고 앨범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유명한 한국, 그것도 케이팝 밴드의 곡이었다.이후 케이팝 밴드들의 앨범을 주의

  • 팬덤은 경제적으로 환원될 수 있는가?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한국음악산업이 글로벌로 진출하면서 국내 아티스트와 기획사들의 체계적인 시스템뿐만 아니라, 그 저변에 자리잡은 팬덤의 끊임없는 문화적 생산성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의 팬덤문화는 오랫동안 학계의 연구 주제가 되기도 했다.특히 국내 팬덤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유무형의 생산물들은 다시 산업 생태계로 편입되면서 독특한 K-팝 문화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팬덤은 자신이 응원하는 아티스트의 글로벌 확산 가능성에 다양한 방식으로 열정(및 경제적 자본)을 투자하며, 기획사는 그들의 열망을 식지 않게

  • 단관, 그 즐거움의 역사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다니면서 인상 깊게 남아있는 경험 중 하나는 단체 영화 관람, 단관이라 불리는 것들이었다. 졸업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종종 학교에서 가곤 했던 단체 영화 관람 기억이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영화관에 가는 일은 가족들이나 연인끼리 함께 시간을 보내는 특별한 이벤트의 의미가 컸다.영화관에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영화들이 있었고, 함께 보는 관객의 수가 많아질수록 커지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단체 관람을 종종 즐겼다. ‘쥬라기

  • 그 많은 팬들은 어디로 갔을까, 세대를 넘어선 덕질 가능성에 대한 고찰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나는 10대 때 그룹 H.O.T의 팬이었다. 또래의 가수(아이돌)가 데뷔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학교 앞 문구점 앞의 엽서를 사들이고, 책받침을 모으고, 잡지 인터뷰를 오려서 스크랩북을 만들기도 했다. 무언가를 깊게 좋아하는 행위인 ‘덕질’, 그중에서도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은 당시 오빠부대로 불리며 10대 소녀들의 전유물처럼 재현됐다. 그래서 대학 입학과 동시에 나는 덕질을 접었다, 아니 접으려고 했었다. 성인이 되면 다들 아이돌을 좋아하진 않는 것처럼 말하곤 했지만, 대학에

  • 아담의 후예, 1과 0으로 만들어진 나의 버추얼 최애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1998년 데뷔한 사이버 가수 아담은 단기간 활동했지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도 그럴 것이 3D기술로 제작한 국내 최초의 버추얼 가수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 3D 기술은 고도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버추얼 휴먼이 무대에서 격하게 움직이지 않는(못하는) 상태에서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이후 국내외에선 꾸준히 버추얼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시도가 있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그룹 에스파 또한 공공연히 멤버는 8명이라고 밝히면서 각 멤버의 버추얼 휴먼을 제작,

  • 어느 날, 최애에게서 DM이 온다면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어느 날 자신의 최애(가장 애정하는 대상)에게서 다이렉트 메시지(DM)가 온다면 어떤 기분일까. 심지어 팬의 개인적 계정에 최애의 메시지가 도착한다면? 혹시라도 최애의 계정이 해킹이라도 당한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피싱일까, 정말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 현실이라면? 나는 진짜, 대답을 해야하나?이로 작가의 신작 소설 ‘뛰어들어 지켜 더 크게 안아’는 멀리서 응원하던 아이돌 X에게서 팬인 ‘내’가 DM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니 이거 무슨 팬픽 같은 이야기야”, 싶을지도 모

  • 팀의 결성과 연대, 그 사이의 서사 :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과 친밀성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국내 콘텐츠가 있을 것이다. 슈퍼스타K, 프로듀스101, 미스터 트롯, 팬텀싱어 등 음악적 장르를 가리지 않고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몰입을 유도하는 기제를 갖는다. 이들 프로그램이 시즌제로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시청자들이 방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수준을 확대하고, 이에 따라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참가자 개인의 스타성, 음악성(

  • 자막으로 영상을 읽는 사람들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콘텐츠 이용관습의 변화는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경우들이 많다. 예를 들어 우리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려면 반드시 시간과 공간을 고려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스트리밍 해 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이처럼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영상 콘텐츠 이용 관습 중 하나가 바로 ‘자막의 사용’이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막의 사용은 이미 제작자·이용자들의 굳어진 시청 행태지만 이렇게 생성된 자막은 출연하는

  • 팬덤과 호명의 기법, 최애가 나를 부를 때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최근에 본 연극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에서 인간의 상황 인지와 언어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를 들어 인간이 ‘죽음’이란 상황을 인지하는 것에는 ‘죽음’의 상태보다 ‘죽음’이라는 언어 그 자체가 우선될 수 있단 것이다. 우리가 언어를 통해 먼저 인지하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그렇기 때문에 상황의 언어를 다르게 호명하는 것이 이 연극에선 죽음을 받아들이는 서로 다른 주체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이것을 바로 덕질에 적용하긴 어렵겠지만,

  • 덕질은 유전되는가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나는 어릴 때부터 상대적으로 미디어에 관심이 많은 축에 속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란 이름으로 호명되는 만큼 초등학생 때 컴퓨터를 사용할 기회가 생겼고, 중학교에 진학할 때는 가정용 캠코더로 친구들을 촬영해 텔레비전으로 상영회도 가졌다. 미디어 문화연구자가 된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미디어에 관심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라났고, 그것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이라 분석할 수 있다.덕질을 시작하면서 나는 팬 수행성이 유전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유전자에

  • 팬 수집가, 비물질 사회에서 현존하는 굿즈의 의미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슬램덩크’ 극장판의 인기가 한창인 가운데 이에 대한 기사나 칼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 또한 어린시절 슬램덩크를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접했고, 강백호와 서태웅을 응원하며 자랐다. 스포츠 장르 만화가 가진 서사구조나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느낄 수 있는 극장 단체 관람의 즐거움 등 몰입감의 요소를 하나하나 꼽자면 여러 가지겠지만, 무엇보다 이 열광 가운데 화제가 되고 있는 슬램덩크 굿즈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다. 굿즈는 일본에서 유래한 용어로 연예인을

  • 나를 발견하게 하는 덕질, 생을 나아가게 하는 힘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많은 스타들에게 팬덤이 정신적 가치를 지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팬들 또한 팬덤을 통해 자신과 연관된 많은 것들을 변화시킨다. 팬들을 인터뷰한 논문들이나, 관련 서적을 조금만 들춰보아도 팬들이 팬덤 활동을 통해 ‘스타’가 아닌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백들이 쏟아져 나온다.모든 팬 활동이 자기계발적인 것은 아니지만(동시에 자기계발적인 덕질만이 옳은 팬 활동인 것도 아니다), 대체적으로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개선하는데 덕질이 긍정적인 영향 주는 것은 사실이다.

  • 평생 지속가능한 덕질을 위하여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덕질의 세계에 잠식됐던 사람이 어떤 이유로 그것을 중단(누군가에게 금지당하거나, 자발적으로 그만두게 될 경우 모두를 포함해)하게 되면 급격히 인생에 재미가 줄어들 가능성이 존재한다. 나 또한 늘상 덕질 유지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은 한동안 멈췄었고 나는 의도치 않게 강제적 휴덕을 경험한 바 있다. 이뿐이랴. 덕질이라는 것은 여가의 일종이기 때문에(덕질이 생계가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 이뿐만 아

  • IP 패러다임 내에서 콘텐츠 포맷의 유동성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콘텐츠 기획의 중심이 IP로 재편되면서 결과적으로 콘텐츠 포맷의 유동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 가능한 원작 보유가 가장 시급한 문제이고, 이것을 어떤 콘텐츠로 제작할 것인가는 차후의 문제가 됐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현재 많은 영상 콘텐츠가 글로벌 OTT 중심으로 유통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시청자들의 유입경로가 다양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단편적으로 끝나기보다는 꾸준히 지속적으로 생산 가능한 연작이나 시리즈물(그러나 동시에 단독으로 이야기의

  • 일상과 팬덤, 온·오프라인 실천의 확장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팬 정체성이 일상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무·의식적인 팬 수행이 자신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낮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8비트 게임이 유행하기 시작한 84년도에 태어나 디지털 미디어와 함께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일상적으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팬덤에 접속하는 방식이 익숙한 세대에 속한다. 나와 같은 디지털 네이티브가 초연결 사회를 접할 수 있었던 건 20대가 넘어선 이후이지만 현재 20대인 Z세대(호모 재피언스, 97년 이

  • 자신의 최애화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어느 날 평범한 삶을 살던 사촌이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팔로워수가 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적당한) 인플루언서가 돼있었다. 사촌은 당시 대학교에 갓 입학한 스무살이었고, 일상적으로 자신이 운동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나 사진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팔로워수가 늘었다.바디 프로필은 연예인이나 혹은 트레이너들이 직업 특성상 촬영해야만 하는 것으로만 알았던 나는 일반 사람들이 하나둘 바디 프로필을 찍는 걸 소셜 미디어에서 종종 목도하기 시작했다. 미디어를 통해 많은 사

  • 엄마, 나 활자돌을 좋아하고 있어요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영상과 교수] 카카오페이지의 유명한 웹소설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데못죽)’은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지식재산권(IP) 확장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작품 중 하나다. 이 소설은 류건우란 공시생이 박문대란 인물에 빙의하여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아이돌 그룹으로 성공적으로 데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백덕수 작가의 데못죽은 한 펀딩 사이트 공식 굿즈 판매 행사에서 최종 4억7000만원이 모금하면서 이목을 끌었고, 이를 통해 대중들도 그 인기를 체감할 수 있게 됐다.데못죽의 주인공인 박문대가 속

  •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단 것은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KBS 예능인 '주접이 풍년'에서는 주로 ‘덕질’을 하는데 있어 세대, 젠더와 같은 요소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덕질을 하는 다양한 팬 주체가 등장한다. 이 예능은 팬들의 팬 행위 또한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팬 문화가 ‘대중화’되어가고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듯하나, 동시에 팬덤을 하나의 예능 콘텐츠로 만들고 주목을 받는 것만큼이나 여전히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있단 것을 반증하고 있기도 하다.덕질이라고 하는

  • 슈퍼 팬덤의 탄생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콘텐츠 산업계에서 팬덤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팬덤은 아이돌과의 연계성이 높은 것으로 이미지화되기 쉽지만 실제로 다양한 형태의 범주를 갖는다. 예를 들어 애플이나 나이키는 소비자를 팬으로 잘 이미지화하고, 독특한 자신만의 브랜딩을 해나간 업체들이다. 팬덤의 역사는 이처럼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으나 미디어 환경의 변화 이전까진 팬들의 행위, 즉 팬의 주체적인 수행성이 가시화되기 힘든 지점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철저히 생산과 소비가 분리돼 있을 때의 말이다.현재에는 팬들

  • 서브텍스트의 주류화, 이제는 비하인드가 필요한 시점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OTT 서비스를 구독하다 보면 채널 안에서 하나의 콘텐츠가 유통될 때, 이로 인해 생성된 서브 텍스트도 함께 가시화되는 경우들을 본다.예를 들어, 최근 디즈니플러스에서 개봉한 ‘메이의 새빨간 비밀’을 보자.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인 원 제목 ‘터닝 레드’는 중국인 소녀가 주인공으로, 갑자기 13살이 된 해에 감정이 요동치면 렛서 판다로 변하게 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무엇보다 메이가 좋아하는 그룹에 한국인 멤버가 소속되어있는 등 케이팝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상징하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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