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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1일 [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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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遠慮] 미치광이와 옹정제에 휘둘리는 韓산업

늦게라도 정부와 산업계 머리 맞대고 대응 나선 점은 반길 일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상흔이 깊게 패인 국내 산업계에 미국발(發) 통상 파고가 거세게 밀어닥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합의와 한국산 세탁기를 대상으로 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을 예고하며 우리나라를 겨냥한 통상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 재협상 추진 과정에서 최측근들에게 ‘미치광이(madman) 전략’ 사용을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정부의 미숙한 초기 대응이 트럼프 대통령이 미치광이 전략을 꺼내드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미국의 통상 압력이 예고된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그저 ‘엄포’ 정도로 받아들이며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고조된 북핵 리스크를 볼모 삼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포 프레임에 갇혀 손 써볼 겨를도 없이 당했다.​ 

 

앞선 중국의 사드 보복 조짐에 대한 미흡한 대처가 다시 한 번 재현된 셈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최대의 통상 위기에 봉착하고도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며 기업들의 공분을 야기했다.


미국과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한국 기업들을 길들이려고 하는 반면, 우리는 개별 기업들이 사안 별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게 직면한 현실이 됐다. 하지만 사드나 FTA 사안은 일개 기업이 통제 불가능한 변수다. 국가 단위의 정치공학적 이슈에서 빚어진 만큼, 기업들의 개별 자구책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미국과 중국의 이해 득실에 따라 맥락없이 휘둘리는 국내 산업계의 시름이 깊어만 가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당분간 미국과 중국의 통상 압박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북핵 리스크로 한미동맹 중요성이 강조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당분간 FTA 협상 등 미국의 통상압력에서 우리 정부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은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위기설이 확산되고 있는 마당에 미국 측 협력이 불가피한 우리 정부가 제 목소리를 내길 기대하긴 사실상 어렵다.


사드 갈등으로 촉발된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 역시 쉽게 회복되길 바라기 어려운 상황이다. 청나라의 강건성세 시기를 미래 중국의 모델로 제시하고 스스로 현대판 ‘옹정제(雍正帝)’를 꿈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책 노선을 감안하면, 사드 보복 국면이 진정되더라도 당분간 중국의 통상압박 기조는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상당히 무게추가 기울어진 판세를 뒤집기 위한 묘수는 찾기 힘들겠지만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이익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업의 목소리를 수렴, 외교력을 통해 살을 주고 뼈를 얻어내는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사안별로 사태가 커질수록 미국과 중국에게도 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미 그들도 주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희망을 걸게 만드는 부분이다. 실제 미국 내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현지 투자 행보에 이번 국제무역위원회(ITC) 판정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미국 자동차와 철강업계 역시 한·미 FTA 개정 합의에 반발하고 있다. 

 

중국도 우리나라가 최대 수입국이라는 점과 중국 내 국내 기업의 고용 창출 효과를 감안하면,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갈수록 그들이 떠안게 될 피해도 만만치 않다. 양국 모두에게 이견들을 조율하고 해소해야 하는 점은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미 시작된 통상위기를 최소의 피해로 막고, 최대의 효과를 노리는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모아 혜안(慧眼)을 도출해야 한다. 


미국이 통상압력의 첨병으로 내세운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판정 대응을 위해 이제라도 산업통상자원부가 삼성전자, LG전자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나선 것은 그래서 반길 일이다.

이번 ITC 판정은 특히 한·미 FTA 재협상을 앞두고 나온 사전 포석 성격이 짙은 것으로 해석돼 우리 정부와 두 기업이 협조를 통해 어떤 해법을 도출할 것인 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졌다.

회의를 통해 참가자들은 한국산 세탁기와 부품의 경우 세이프가드 적용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같은 우리 정부와 해당 기업의 의견은 서면으로 작성돼 ITC 측에 전달될 예정이다. 

 

이번에 도출된 방안은 세이프가드가 발동될 경우를 상정해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되고 있다. 

 

세이프가드 발동 자체를 막는 근본적인 처방과 거리가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정부와 업계가 의견을 조율해 능동적 대응에 나섰다는 점은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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