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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3일 [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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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자수첩] 상처에 소금뿌린 MB정부 블랙리스트

박 정부 문체부 이어 MB정부 국정원 블랙리스트 연루…불신 팽배 상황에 악영향

블랙리스트. 오랜만에 새겨보는 단어다. 이 말은 기자의 머릿속 곳곳을 오랫동안 맴돌았었다. 지난해 하반기, 사석이건 공석이건 다방면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만나려 했다. 관련 기자회견에도 몇 차례 참석했었다. 이야기 중 일부를 기사에 녹여내기도 했다. 그대로 묵혀버린 내용도 있다. 정황 상 의심 가는 사례지만 확실한 단서가 부족했던 경우다. 그래도 현장 예술가들의 문제인식만은 가감 없이 전달하려고 애썼다.

 

수십 개 매체서 몇 개월 간 보도가 쏟아졌다. 이슈를 추적하던 기자조차도 모두 챙기지 못할만큼 고발이 차고 넘쳤다. 그 후의 상황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전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됐다. 보수진영의 전략가로 불리던 이는 정무비서관 신분으로 블랙리스트에 가담해 여전히 감옥에 있다.

 

탈식민주의 연구자로 학계에 이름을 알렸던 사립대 교수는 교육문화수석으로 이 사태에 개입해 재판 중 법정 구속됐다. 청와대 비서관과 문체부 차관으로 탄탄대로를 달려온 한 변호사는 커리어의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게 됐다. 정점에 선 전직 대통령은 곧 이 혐의에 대해 법의 심판을 받는다.

 

여기서 끝인 줄 알았다. 그 사이 기자의 담당분야가 IT(정보기술)로 바뀌었다.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는 그렇게 뒷전으로 밀려났다. 너무 때 이른 망각이었을까. 이명박 정부 때도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가 밝혀냈다. 한 문화계 인사는 충분히 예상했던 바지만 명단을 보니 가관이다. 영화감독 이름이 그렇게 많은걸 보면 김기춘 전 실장보다 더 영화인들을 좌파라고 인식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명단에 이름이 오른 총 82명 중 영화감독의 숫자만 52명에 달한다.

 

엄밀히 말하면 MB의 블랙리스트가 의 블랙리스트보다 죄질이 훨씬 더 나쁘다. 박근혜 정부는 지원금을 고리 삼아 예술가들을 압박했다. 이명박 정부는 블랙리스트에 올린 연예인의 기획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유도했다. 방송 진행자 퇴출을 압박했다. 정부를 비판하는 연예인들이 아예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게 했다.

 

만약 해외에서 시민들의 정당한 밥벌이를 정부가 일부러 나서 차단하고 배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면 어땠을까? 아마 그 나라의 문명 수준을 방증한다고 생각했을 거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의 중 법에 따라 엄정하게 조사돼야 한다고 말한 이상 수사는 급물살을 탈 것이다. 몇 개월 전 우리가 지켜본 대로 수사하고 그 중 일부를 구속기소하면 적폐는 완전히 도려지게 될까?

 

그게 바람 뿐이라는 걸 최근에야 여실히 깨달았다. 블랙리스트는 압박, 배제의 차원에 그치는 단순한 스캔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체부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이번 (문체부) 인사를 통해 상당수 고위직들의 면면이 바뀌긴 했지만 또 그 사이에서도 (블랙리스트 사태에 관해) 어느 선까지 책임이 있고 어느 선부터는 없는지 등 서로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판을 새로 짜야하는데 이런 상황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현장 문화계 인사들의 눈도 곱지 않다. 문체부에 이어 국정원까지 연루된 탓에 공적 조직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화연대는 문화예술계에 대한 국가범죄는 오래 전부터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자행됐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수사와 처벌은 어떠한 성역도, 시효도 없이 진행돼야 한다고 성명을 내놨다.

 

앞선 문화계 인사는 “MB정부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 다시 문화 이슈가 정국 한복판에 놓이지 않겠나. 이는 다시 정쟁의 도구로 활용될 거다. 안팎의 신뢰를 다시 모으기에 점점 불리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폐허가 돼 상처투성이인 문화계에 MB정부가 소금을 뿌려버린 형국이다. 문화계 적폐청산의 길은 아직 멀고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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