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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5일 [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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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통령에게 ‘사저 손질’ 얘기도 못 꺼내서야

오도된 리더십 재확인한 청와대 지각 퇴거 소동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오후 7시39분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왔습니다. 파면 결정 사흘만입니다. 청와대와 15km 23분 만에 달려온 여기를 안식처로 부르기는 이릅니다. 임기 5년을 못채우고, 4년1개월 만에 청와대에서 쫓겨나면서 생긴 이날의 귀가 행차는 개인의 비극이자 대한민국의 비극이었습니다.

감색 원피스를 차려 입은 박 전 대통령은 그러나 마중하는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 10여명의 친박 의원과 역대 비서실장, 박사모 등에게 미소를 건넸습니다. 물론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집안에 들어섰을 때 울음을 터뜨렸다지만 TV 현장 중계 화면에는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탄핵을 외쳤던 이들은 “가증스럽다”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추종자 등은 “역시 담대한 큰 인물”이라는 평가와 함께 연민의 정을 드러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는, 승복을 거부하는 몸짓과 연결시켜 새로이 전개될지 모를 파란을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모습이 각자 시각에 따라 느낌은 달랐겠으나 씁쓸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자업자득인 탄핵은 그렇다 하더라도, 청와대를 비워야 하는 막판까지 흉했기 때문이지요. 박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인용 이후 수 십 시간 청와대 관저에 머무르는 바람에 ‘방 빼라’는 치욕까지 맛봐야 했습니다. “과거 젊은 시절에도 18년 간 살아서 청와대를 자기 집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있었습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등이 “송장에 칼 꽂는 발언은 삼가라”라고 당부해서인지 잦아들기는 했습니다만 어쨌거나 12일 오후 7시를 넘겨 청와대를 떠나기까지 여러 사람을 떠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를 아끼는 이들조차 쓸데없는 처신으로 공매를 번다며 못마땅해 했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은 당초 알려진 것과 분명 다릅니다. 지각 퇴거는 청와대 관저에 연연해서가 아니라 청와대를 나와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탓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될 것을 자신했기 때문에 전혀 준비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박 전 대통령의 동생 지만씨는 지인에게 “삼성동은 걸레질도 안 돼 있는데 어쩌느냐”며 걱정했다고 합니다.

내막을 모르면 이런 일처리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국가 최고기구인 청와대가 아니라도 웬만한 조직·집단에선 주요한 과제를 추진할 때면 상황 전개에 따라 대처할 복수안쯤은 마련합니다. 플랜B는 준비하지요. 그런데 탄핵이 인용될 경우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실제 8대0 전원 일치 탄핵인용으로 끝났기도 했습니다만 기적이 아니고선 ‘기각 3’ 확보가 거의 불가능한 마당에 최소한의 대책 수립을 하지 않았다니 말이 되나요. “아무리 ‘직무정지 대통령’이라도 그런 식으로 보필하다니…” 청와대 비서실 관계자들을 “한심한 X들”이라고 욕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이게 진상이라면 욕을 먹는 게 아니라 한참 맞아도 쌉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끝물 청와대의 비서진이라도 청맹과니가 아닌 이상 헌재 움직임에 그 정도로 깜깜할 리 없을 터입니다. 그런데 ‘일각’에서 기각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알렸다는 것이고 ‘박 대통령’은 여기에 필이 꽂힌 모양입니다. 그러니 어느 누가 ‘탄핵 인용=파면’을 지껄이느냐 말입니다. 나중에 삼수갑산 가더라도 당장의 소나기를 피하는 게 장땡이라는 판단을 했음 직 합니다. 이러니까 청와대 내부 기류는 ‘탄핵 기각’으로 ‘굳어졌고’, 삼성동 사저를 미리 손보는 일은 아예 없었던 것입니다.

비서진이 대통령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닦달·진노를 피하려고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면 치도곤 감입니다. 평소라면 징계가 아니라 형사처벌 대상일 겁니다. 허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일면 이해가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자기의 마음에 안 드는 진언에는 눈총 레이저 빔을 쏘고, 그래도 멈추지 않으면 ‘떠나라’고 쏴붙인 것으로 악명 높습니다. 불통과 독선·독주를 낳게 한 바로 그 초강력 철추가 나중에야 어찌되건 입 다물자는 보신주의를 팽배하게 한 듯합니다. 이런 게 삼성동 자택을 방치하는, 그래서 ‘방 빼라’는 조롱까지 받게 만든 배경일 겁니다. 결국 궁극적 책임은 박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얘깁니다.

이러고 보면 재임 중 유사한 사례가 얼마나 있었을지, 그로 인해 국정이 얼마나 왜곡됐을지 짐작만 해도 아찔합니다. 최순실 이외 장관·비서관들은 이의 제기를 거의 못했을 테니…. 오늘의 파면 사태가 우연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팔푼이 ‘강화도령’도 왕이 되면 서슬이 퍼렇다고 합니다. 여기의 ‘왕’은 오늘날 대통령일수 있고, 대기업 회장일 수도 있습니다. 절대 권력 측면에서 말이지요. 하물며 ‘개성’이 유다른 박 전 대통령이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항간에 나도는 ‘그녀는 잘못한 게 없다. 무능·무책임했을 뿐이지. 원초적으로 사리판단을 못하는 사람을 처벌해선 안 된다. 뽑은 게 잘못이지’라는 게 무슨 뜻일까요.

잘못된 리더십이 나라를 멍들게 하고, 이념적 동료들에게는 오물을 뒤집어씌운 쓴 경험을 반면교사 삼는다면 오늘의 혼란도 그나마 한 가닥 다행입니다. 정파를 넘어, 모두에게 말입니다. 곁들여 눈치 보기 9단인 관료, 비서·장관 등에게 대통령을 맡길 수 없다면 언론과 국민이 이네들을 더 철저하게 감시하는 도리밖에 없음을 함께 명심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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