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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일 [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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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CEO 식탁 메모] 만한전석과 중국의 민낯

만주족·한족 화합의 상징으로 이미지 포장…실제론 청나라 황제 위세 과시하는 '안하무인' 잔치

만한전석(滿漢全席)은 청나라 때 만주족과 한족 최고의 진귀한 요리를 모두 모아놓은 최고의 잔치, 청나라 황제가 만주족과 한족의 단합을 위해 베푼 화합의 잔치로 알려져 있다.
 

과연 그럴까. 만한전석의 역사를 보면 오히려 화장하지 않은 중국의 민낯을 볼 수 있다. 만한전석은 어떤 잔치였을까.


흔히 만한전석을 환상의 잔치로 상상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만한전석이 화려한 것은 분명하다. 음식이 아니라 조각 같고 그림 같아 젓가락 대기가 아까울 정도이고 사흘간 지속됐다고 할 정도로 가짓수가 많았으니 좋다는 요리는 다 차렸지만 따지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다. 아는 요리가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제비집 수프, 샥스핀, 전복과 해삼, 버섯, 자라탕 등이고 만주족 요리도 귀로 들어 익숙한 것들로 고대의 산해진미 곰 발바닥, 사슴꼬리 등등이다. 지금은 모두 금지식품이이니 현대판 만한전석에는 다른 요리로 대체됐다.
 

또하나, 만한전석이 실제 존재했는지 그리고 지금 만한전석이라고 부르는 연회요리가 과연 만한전석이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청나라 궁중잔치에 만한전석이라는 이름의 잔치는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정사(正史)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고 야사에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관청이나 민간 주최 연회에는 만한석(滿漢席)이라는 이름의 잔치가 있었다. 개인 문집에 기록으로 나온다. 

 

그러면 궁중잔치에 만한전석이라는 잔치가 없었냐고 한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도 없다. 궁중 잔치에는 어차피 지배층인 만주족과 관리 계층인 한족이 모두 참석했으니 ‘만한’이 합동으로 잔칫상을 받은 것은 맞다. 그리고 이런 잔치는 연회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만주 요리는 여섯 가지, 한족 요리는 다섯 등급으로 준비해 따로 따로 준비했다.
 

이런 연회 중에서 흔히 만한전석의 모델이라고 말하는 잔치가 강희황제와 건륭황제가 주최한 천수연(千叟宴)이라는 잔치다. 청나라 정사인 청사고(淸史稿)에 따르면 강희제의 잔치에는 65세 이상 만주족 문무대신 680명, 한족 관리 340명 등 약 1000명이 참석했고 건륭황제 재위 50주년 기념 천수연에는 만주족과 한족 노인은 물론 조선을 비롯해 주변국 노인까지 모두 3000명을 초대했다.
 

그런데 이 잔치가 과연 만주족과 한족의 화합을 위한 잔치였을까. 이때는 청나라 최고 전성기 때다. 화합의 잔치가 아니라 청나라 황제가 피지배 계층인 한족을 비롯해 주변국에다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고 위세를 보이려는 잔치였을 뿐이다. 그런데 왜 만한전석이 화합의 잔치로 소문이 났을까.

 
현대에 만들어진 허상이다. 만한전석이 유명해진 것은 70년대 홍콩 TV가 거금을 들여 청나라 황제의 잔치에 등장했다는 요리를 재현해 TV로 중계하면서부터다. 그리고 옛날 청나라 황제가 만주족과 한족 화합을 위해 마련했던 만한전석이라고 이름 지었다.


따지고 보면 이 부분이 흥미롭다. 비유해 말하자면 하인이었던 한족이 주인이었던 만주족 집을 접수한 후 스스로를 주인과 동격으로 높이고, 하인이 아니라 주인이 사정해 도와준 것이라고 포장한 것에 다름 아니다.
 

최고의 잔치, 화합의 잔치로 알려진 만한전식이지만 실체는 힘 있을 때는 안하무인이고 약할 때는 한없이 굽히며 자기 합리화를 꾀하는 중국의 민낯이 만한전석에 감춰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제 화장하지 않은 중국의 진짜 모습을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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