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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9일 [T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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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쓰다, 칼럼] 졸업이 슬픈 한국 대학생들

임슬아의 취준진담

친구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미국인과 사귄다. 그 남자 친구는 5월 졸업식을 갖는다고 한다. 그 졸업식에 참석하겠다고 친구는 돈을 모으고 있다. 자기 졸업식엔 가지 않겠다고 뻗대더니 애인 졸업식이라고 비행기까지 탄다니. 남자 친구에게 졸업식의 의미가 각별하다나.  


미국에서 졸업식은 축제다. 학사모를 꾸미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학사모 위에 ‘여기까지 오는 데 11만달러(한화 13억원) 들었음’ ‘지금은 내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 등 대학 졸업의 고단함과 뿌듯함을 문구로 표현한다. 미국 대학생들은 졸업하면 학생 시절과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졸업을 삶의 한 막이 끝나고 또 다른 막을 시작하는 분기점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한국 졸업식은 다르다. 10명 중 4명밖에 참석하지 않는다. 4학년 2학기를 마치면 예비 졸업생보다 취업준비생이 된다. 이에 졸업생이 지난 대학생활을 소중하게 여기기란 무리다. 졸업이 ‘학업의 끝, 사회 진출의 시작’이기 어려운 탓에 학업이 끝나는 걸 즐길 수 없다.


졸업식 하루는 즐길 수 있다. 멋진 사진을 찍고 예쁜 꽃을 받고 화려한 하루를 보내면 피로감이 든다. 졸업의 의미를 생각하고 느낄 여유가 없는 학생들에게 졸업식의 뒷맛은 씁쓸하다.


한국 학생은 잦은 휴학과 졸업유예 탓에 대학생활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졸업하기 어렵다. 완전히 낯설지도, 온전히 친밀하지도 않은 애매한 동기들과 마주하기는 고역이다.

 

한국 졸업식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어울리던 친구들과 동시에 졸업해야 학교 안에 플랜카드도 걸고 학사모를 던지는 멋진 한 컷을 얻을 수 있다. 미국에서도 갈수록 졸업유예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지만, 이들에겐 어렵게 졸업한 만큼 자기 노력을 인정할 줄 안다.


신입생 시절 대학교는 멀게만 느껴졌다. 사람과 배움이 피부에 닿지 않는 느낌의 연속이었다. 늘 이곳에 속한 게 맞는지 불안했다. 나 하나 학교에서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거라는 생각 탓에 학교가 꽤나 낯설었다. 어느덧 정규학기가 끝나는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제서야 강하게 연결된 사람과 배움이 생겼다. 그들 중 많은 친구들이 이번 겨울에 학교를 떠났다.


어떤 친구는 취업했다. 어떤 친구는 이름 없는 일을 찾기 위해 탐색 중이다. 이들에게도 학업이 끝났다는 의미를 즐길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같이 졸업식이 끝난 이들은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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