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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9일 [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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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자수첩] 현대차, 베푼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

문제 없는데 소비자 만족 위해 베푼다는 의식 버려야

임금은 백성에게 선정(善政)을 베풀고, 사장은 직원들에게 특전을 베푼다. 대통령은 경제 살리라며 감옥에 있는 재벌 총수를 사면하고 싸락눈이 바닥에 쌓일 때면 우리는 어려운 이웃에 자선을 베푼다.

베푼다는 보통 이렇게 쓰인다.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갑이 을에게 뭔가를 줄 때 우리는 ‘베푼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베푸는 이는 늘 선자(善者)고, 베풂을 받는 이는 보통 빈자 혹은 약자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고객들을 대상으로 베풀 일이 있었다. 현대차는 9일 신형 그랜저(IG) 시트에 주름이 발생하는 것과 관련해 6개월 이내 전 차종, 모든 시트에 대해 보증수리해주기로 했다. 현대차는 이날 동호회 회원들을 직접 만나 주름이 발생한 원인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이 같은 보상안을 밝혔다.

현대차에 따르면 시트 주름은 천연 가죽 재질 특성상 발생한 현상이다. 즉, 결함도 아니고 불량도 아니다. 다만 고객 ‘감성 품질’ 만족 차원에서 이 같은 보상을 결정했다고 했다. 요약하자면 “다른 회사들은 하지 않을 보상을 우리는 해준다”는 식이다. 현대차는 이를 품질경영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가 말하는 품질경영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시트 주름 문제를 무상수리로 대처한 것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 혜택을 받는 소비자들이 박수치지 않고 있다. 원인은 간단하다. 현대차 발표 탓에 소비자들은 ‘문제가 아닌 걸 문제라고 말한 자’가 됐고 현대차는 ‘문제가 아닌 데도 혜택을 베푼 자’가 됐다. 소비자를 위한다는 태도가 소비자를 초라하게 만든 셈이다.

현대차는 베풀고 싶었을 게다. 회사가 소비자와 소통하며 억울함을 토로할 수 있다.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자사 자동차를 수천만원 주고 사간 소비자들에게 베풀 필요는 없다. 소비자는 빈자도 약자도 아니다. ‘품질 경영’의 최종 결재권자는 회장도, 회사도 아닌 소비자다. 그래서 소비자는 갑이 될 자격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수십, 수백 명의 소비자들이 불편함을 토로한다면, 현대차는 고객소통이든 품질관리든 잘못을 저지른 게 맞다. 현대차가 사과할 이유는 있지만 소비자가 사과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현대차는 베풀 자격이 없다. '해준다'는 갑의 자세에는 책임은 없고 자만과 몰이해만이 자리할 뿐이다.


시트 논란 외에도 현대차 앞에는 수많은 의혹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최근에는 현대차가 리콜을 무마하기 위해 국토부 담당공무원을 관리했다는 의혹이 국회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싼타페 급발진 논란, MDPS(전동식 파워스티어링) 불량 의혹은 덤이다. 현대차는 올해 품질 경영을 최우선 순위로 두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베풀기 전에 공감하라. 그리고 진실되게 사과하라. 누워서 절 받기는 소비자가 원하는 품질 경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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