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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6일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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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칼럼] 대한민국, 같이 땅을 갈 자 누구인가

정재웅의 콜라주 소사이어티

공화정 로마에서 집정관(Consul)은 '관직의 사다리(Cursus Honorum)' 정점에 위치한 관직이었다. 매년 민회에서 두 명씩 선출되는 이 관직은 로마의 모든 내치와 외교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있었다. 전쟁에서는 군단의 사령관으로서 절대지휘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집정관은 로마에서 관직의 사다리를 밟기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리는 자리였다. 


집정관은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보유한 공화정 로마의 최고 관직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집정관의 라틴어명인 콘술(Consul) 어원은 "같이 땅을 갈다"다. 즉 소 두 마리가 함께 땅을 갈아 농사를 짓듯이 두 명의 최고 정무관이 합심하여 공화정 로마를 잘 이끌어달라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 바로 콘술이다.

이처럼 민주주의와 공화정의 시스템 초창기에 존재했던 공화정 로마에서조차 최고위 정무관인 집정관은 비록 최고 권력은 지녔을지언정 무소불위로 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어떤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삼백 명에 달하는 원로원 의원을 설득해야 했다. 법안이 민회에 회부되었을 경우 호민관의 거부권도 감내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한 달 걸러 한 번씩만 돌아오는 자신의 집정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 막중한 권한만큼이나 막중한 제약과 책임이 따랐던 것이다.

무엇보다 공화정 로마에서 집정관이 되기 위해서는 긴 관직생활과 혹독한 검증을 거쳐야 했다. 공화정 로마에서 정치에 입문하는 야심찬 청년이 있다고 치자. 그는 27세에 재무관(Quaestor)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관직 생활을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명예로운 경력을 통해 집정관이 되기 위해서는 30세에 출마가 가능한 조영관(Aedilis)과 조영관 임기를 마치고 2년의 휴직기를 거친 후 출마가 가능한 법무관(Praetor)을 모두 성공적으로 마쳐야만 했다. 또한 그는 법무관 임기 종료 후 전직 법무관(Pro Praetor)으로 1년 혹은 그 이상의 절대지휘권을 보유한 속주 총독 임기까지 성공적으로 마쳐야 집정관에 입후보할 수 있었다. 

공화정 로마는 선거와 관직이라는 복수의 후보자 검증절차를 지니고 있었다. 선거에서 당선되었더라도 그 임기동안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 그는 상위 관직으로 출마가 불가능했다. 설령 법무관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더라도 속주 총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제대로 된 업적을 남기지 못하거나 혹은 지나친 가렴주구로 인해 로마 귀환 후 속주민들의 소송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집정관 출마는 언감생심이 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화정 로마의 원로원은 스워드 라인(Sword Line)을 중심으로 여당과 야당의 치열한 설전이 벌어지는 현재 영국 의회 못지않은 치열한 설전의 현장이었다. 정책에 대한 논박은 당연한 거고, 법률을 입안한 당사자가 자신이 속한 파벌의 반대파라도 되면 작게는 야유부터 크게는 인신공격까지 다양한 비난과 비판이 행해졌다. 이 치열한 정쟁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은 사람만이 집정관에 출마할 수 있었다.

고대 공화정 로마의 관직 및 검증 시스템이 이럴진대, 한국 대선의 검증 시스템이 가혹하고 엄중한 것도 당연하다. 국회의원이라면 선거와 국회에서의 활동을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 장관 혹은 그에 상응하는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정무직 고위 공무원일 경우에는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시장이나 도지사 같은 선출직 공무원일 경우에는 선거에 더해 시정이나 도정을 통한 능력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은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인구 및 영토 규모 세계 80위권의,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나라인데다가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등 글로벌 슈퍼파워를 주변국으로 두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엄중한 검증 시스템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선출직 공무원의 최고 위치인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 하물며 사람들의 냉소와 비판과 비웃음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일찍이 윈스턴 처칠은 그의 에세이집인 '폭풍의 한가운데'에서 "정치인이란 다른 정치인들과 토론하고, 반대당에게 비판과 비난을 받고, 시민들로부터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자기 할 일을 하는 직업"이라 말한 바 있다. 한 국가를 운영하는 일은 이렇게 엄중하다.

토론, 대화, 비판, 냉소를 이기지 못하고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은 대통령의 무게를 감내할 수 없다.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의 불출마선언은 귀국 후 그가 보여준 유아독존식 불통 행보를 감안한다면 당연한 결과다. 대통령 혹은 정당의 대통령 후보는 막연한 이미지로만 선출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의 선출직 공무원 및 임정직 고위 공무원에 대한 검증은 더 엄격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작년 10월부터 계속된 정국의 혼란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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